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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중세 이전에 수백 년산 세계의 문화화 되는 한 부분이었다.


  원시인들의 동굴 그림, 성서 속의 이야기들, 이집트인들의 상형문자는 모두 사람들이 악기들을 발명하여 수세기 동안 음악을 연주해 왔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음악이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의 뮤즈들, 예술과 과학의 아홉 여신들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예술로서 음악에 대한 첫 번째 연구는 기원전 500년대경 피타고라스(Pythagoras, BC582~ BC497)가 음향과 음의 수학적 관계를 연구하였을 때로 추정된다. 이 연구에서 피타고라스와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 양식, 즉 온음과 반음으로 구성된 음계의 체계를 잡았다.

  유럽사회가 로마제국의 쇠퇴와 그리스도 교회의 부흥 사이의 암흑기를 서서히 벗어나며, 수십 개의 작은 오아국들이 유럽 전역에 생겨났고 각각의 왕국들은 싸워서 영토를 차지한 영주들에 의해 지배되었다. 대부분 미신적이었던 두려움 때문에 초기 교회는 이 봉건적 영주들에게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였다. 교회는 교회만의 제재 하에서 예술과 문학의 발전 과정을 조정하였고, 모든 작가들, 음악가들, 그리고 예술가들을 직접 고용하였다. 이 당시에 서양음악은 거의 교회만의 자산이였다.

서양음악의 전통은 중세 시대, 대략적으로 기원후 500년에서 1400년 정도까지, 유럽에서 일어났던 사회적, 종교적 발전에 기인할 수 있다.

  특히 이 시기 초기에는 기독교 교회의 지배로 인하여, 종교 음악이 가장 널리 퍼져있었다. 그레고리오 성사(Gregorian Chant)로부터 시작하여, 교회 음악은 서서히 12세기 파리의 노트르담성당에서 연주되었던 오르가눔(Organum)이라는 다성음악으로 발전하였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악기 반주 없이 오직 하나의 선율로 불려지던 노래(단선율 성가)이다. 때로는 낭독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리듬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리듬은 2박자나 3박자 등의 규칙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을 탄다. 중세 시대에 가장 중요한 예배 의식이자 음악인 미사곡과 13세기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가장 중요한 노래 형식이었던 모테트(Motet)는 모두 이 그레고리오 성가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레고리오 성사는 처음에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해졌지만 차츰 노래가 많아지면서 모든 노래를 일일이 기억하기 어려운 상황을 위해 노래를 기록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음표를 기록하는 '기보법'이다. 기보법이 발명된 것은 대략 8세기로 추정되는데 이는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다.

  하나의 선율로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던 당시 사람들은 차츰 여러 선율을 동시에 부르는 다성음악을 시작했다. 이 놀라운 변화는 동양 음악과 서양 음악을 가르는 중요한 차이점이기도 한데, 다성음악의 발전은 기보법의 발명에 버그가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음악은 더욱 깊어지고 풍부해졌으며, 점점 복잡해졌다. 10세기부터 진행 되기 시작한 다성음악의 발전은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수십 개의 성부가 각각 다른 선율을 노래하는 합창곡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중세 시대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지속적인 발전과 더불어서 교회 밖에서도 많은 새로운 음악들이 생겨났다. 주로 12세기와 13세기 동안에 시작된 이 음악은 여러 지역을 유랑하던 음유시인들에 의해 주로 만들어졌으며, 그들은 고귀한 여인에 대한 사랑이나 목동의 노래 등 세속적인 주제를 노래했다. 교황의 권위가 중세 말기로 갈수록 서서히 약화되면서 각각의 성을 지배하던 황과 귀족들의 권세가 높아지며 교회음악 보다 세속음악이 급격히 발전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14세기 무렵부터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귀족들의 연회를 목적으로 춤곡이나 사랑노래가 두드러지게 증가하게 되었다. 이렇게 중세음악은 세속음악(Trouveres)과 또한 음유시인(Troubadours)의 손에서, 서양 음악 최초의 천재 음악가인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 1300 ~ 1377)의 교회음악과 세속음악 작품이 절정에 이름 시기까지 번창하였다.